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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레 영화 일기

날 용서해줄래요? (Can You Ever Forgive Me?, 2018)

by 비레레의 영화 일기 2025. 4. 18.

 


유명 작가의 편지를 위조하고 있는 리 이스라엘

기본 정보

 

감독: 마리엘 헬러

출연: 멜리사 맥카시, 리처드 E. 그랜트, 도리안 미소크, 제인 커티스, 안나 데버 스미스, 벤 팔코네 등

개봉일: 2019년 2월 21일

해외 개봉일: 2018년 10월 19일 (미국)

IMDb 평가지수: 7.1 / 10

로튼토마토 평가지수: 98% (신선도 지수)

네이버 평점: 8.67 / 10


영화 줄거리

 

멜리사 맥카시가 열연하는 리 이스라엘은 한때 베스트셀러를 낸 적이 있는 논픽션 작가로, 1970~80년대 뉴욕의 문학계 한편에서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독자의 취향이 바뀌고, 출판사들의 시선도 점차 그녀에게서 멀어지게 되죠. 경제적 곤궁에 빠진 리는 주변의 무관심 속에서 일종의 자포자기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회사에서 문서 교정 일을 하고, 종종 예전 작품의 인세로 연명하지만, 낡은 아파트의 임대료도 제때 내기 어려울 정도로 생활은 곤란해집니다.

 

이렇듯 궁지에 몰린 그녀 앞에 예상치 못한 기회가 나타납니다. 유명 작가나 배우들이 주고받은 편지가 수집가들 사이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이죠. 언뜻 보기에도 문학사적 가치가 있는 편지라면 수십, 수백 달러는 우습게 넘어가는 세상이었습니다. 리는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금전적 어려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위험한 생각을 품게 됩니다. 직접 유명 작가의 육필 편지를 ‘창작’해서 골동품 서점이나 수집상에게 파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였죠.

 

이미 논픽션 작가로서 인정받았던 리는 문장 구성과 필체 재현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과거 작가들의 스타일을 연구하고, 실제 기록을 면밀하게 파고들어 그들이 썼을 법한 이야기와 어휘를 구사합니다. 그 시대에 나온 구형 타이프라이터를 구하고, 작성된 편지는 오븐에 구워 낡은 종이로 만드는 치밀함으로 금방 눈치채기 어려운 완벽한 위조 편지를 탄생시킵니다. 처음에는 범죄라는 자각이 불편하게 스치기도 하지만, 점차 거래가 늘어나면서 돈맛을 보게 되고, 자신이 오랜만에 사람들에게 관심과 반응을 얻고 있다는 묘한 만족감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때 리의 범죄 행각에 동참하는 인물이 잭 호크(리처드 E. 그랜트)입니다. 잭은 노숙생활을 하기도 하고, 술에 빠져 살아가는 등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사기꾼 기질의 게이 친구입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뉴욕 거리에서 힘겹게 생존해가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리와 기묘한 동질감을 형성합니다. 둘은 같은 성소수자이자 한때 전성기에 어울렸던 친구라는 동질감 안에서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위조 편지를 시장에 흘려보내고, 막힌 금전 문제를 해결해나가죠. 그 과정에서 리는 극도로 예민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잭은 장난기 가득한 태도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기극은 세상에 영원히 들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집상들 사이에서 잇따라 ‘희귀하고 독특한 편지’들이 같은 출처로 나오자 의심이 쌓이게 됩니다. 매력적이지만 수상한 편지를 파는 이 수상쩍은 작가가 누군지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죠. 결국 리는 법정에 서게 되고, 잭과의 관계 역시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영화는 범죄를 저지른 주인공이 처벌을 받는다는 전형적인 결말 구조를 뒤엎고, 오히려 리가 자기 고백을 위한 또 다른 문장을 쓰기 시작함으로써 끝맺음에 다다릅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범죄 드라마가 아니라, 진정한 예술적 갈망과 자기 구원의 서사를 보여주죠.

 

특히 멜리사 맥카시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코믹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어두운 그림자를 지닌 리 이스라엘을 매우 설득력 있게 재현합니다. 캐릭터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외로움과 분노, 그리고 문학적 재능에의 갈증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리처드 E. 그랜트 역시 극 중에서 풍부한 감정 변주로 잭을 입체적으로 완성하며, 리와의 관계가 단순한 비즈니스 동반자 이상의 의미를 띠도록 설득해냅니다.

 


리와 잭의 화해

감상과 해설

 

영화 <날 용서해줄래요?>가 내뿜는 정서는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우울하고도 아름다운 기운입니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예술적 재능’이라는 것이 정말 어디에서 기인하며, 어떤 이유로 사람을 파멸로까지 내몰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자리합니다. 리 이스라엘은 훌륭한 작가였지만,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다시 세상의 인정과 돈을 얻는 일, 혹은 문장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고 현실에 굴복하는 일뿐이었죠.

 

이때 리가 택한 길은 타인의 목소리를 가장해 세상을 속이는 것이었으며, 이 행위 자체가 역설적으로 그녀 본연의 문학적 능력을 더욱 빛나게 했습니다. 여기서 감독 마리엘 헬러는 냉혹하고 무심한 도시 뉴욕의 그림자 속에서, 의심이라는 장막을 거두어내기 전에 만들어지는 찰나의 예술적 희열을 포착합니다. 그러면서 관객은 “정말로 리의 문장이 완전히 거짓말이었을까?”라는 묵직한 물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녀의 위조 편지에는 작가로서 품었던 진짜 감정들이 스며 있었기 때문입니다.

 

멜리사 맥카시가 구현해낸 리 이스라엘은 무뚝뚝하고 공격적인 성격 안에 연약한 자아를 숨기고 있습니다. 돈과 성공을 향한 욕망이 아니라, 잃어버린 작가적 자존감을 되찾고 싶은 갈망이 훨씬 강하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드러납니다. 관객은 리가 편지를 위조하는 순간마저도, 그것이 문학적 창작 욕구의 연장선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범죄이자 동시에 창작 행위라는 이 기묘한 딜레마가, 작품 전반에 묵직한 무게감을 실어주죠.

 

한편 리처드 E. 그랜트가 연기한 잭은 그러한 리의 고독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는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쾌활하고 허술해 보이지만, 잭 역시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한 이방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는 리를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그녀와 마음 한 켠을 나누는 묘한 동지 의식을 갖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비틀린 공간에서 서로를 지탱하지만, 결국 이 사기극이 파국을 맞이하게 될 때 그 뿌리깊은 외로움이 더욱 도드라집니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허위로 제작된 편지들이 실제보다 더 진실하게 느껴지는 역설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리가 빚어낸 ‘가짜 문장’들은 오히려 시대에 인정받지 못한 작가가 품은 진짜 절규였고, 재능에 굶주려 있던 이가 마지막으로 내뿜은 창작의 숨결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날 용서해줄래요?>는 인생의 불운과 예술적 욕망이 결합할 때 어떤 파멸과 구원이 공존할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보여줍니다.

 


멜리사 맥카시의 얼굴 위로 풍부하게 펼쳐지는 드라마

결말 해석

 

결말부에서 리 이스라엘은 법정에 선 후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며, 범죄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과 여전히 버리지 못한 작가로서의 자존심 사이에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냅니다. 판결은 그녀에게 실형 대신 사회봉사를 선고하고, 리는 다시 타인을 위한 글쓰기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복원하려 시도합니다. 이 선택은 단순히 법적 처벌이 경감됐다는 의미를 넘어, 그토록 원하던 문학적 명예와 자기 구원의 가능성을 다시 찾았다는 상징으로 읽힙니다.

 

“용서”라는 단어는 이 영화에서 도덕과 법률의 틀을 넘어, 작가와 독자, 나아가 인간이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화해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리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역설적으로 그 범죄가 그녀를 다시 쓰게 만들었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외로움을 문장으로 풀어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리가 마지막에 내밀한 고백을 건네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과정에 도달한다는 점이 이 결말이 지닌 큰 울림입니다.

 


별점과 한 줄 평

 

<날 용서해줄래요?>

문장의 위조 속에 가려진 가장 솔직한 목소리

★★★☆

 


 

날 용서해줄래요?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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